Geoffrey Miller on evolution of language
- 2025-07-06
- 별칭: 언어 진화에 대한 제프리 밀러의 견해
제프리 밀러는 언어는 진화적 적응이며 무엇을 위한 적응인지를 따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논쟁은 언어가 적응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무엇을 위한 적응이냐에 모아지고 있다. —p521, The mating mind
유인원 언어 논란은 인간 언어의 진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하지 않다:
유인원 언어 논란은 애초에 무의미했다. 우리는 이미 침팬지는 선천적으로 말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사실은 5백만 년 전에 살았던 우리와 침팬지의 마지막 공통조상 역시 말을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언어는 최근 5백만 년 동안 진화했다. 인간의 어떤 적응이 우리와 침팬지의 마지막 공통조상으로부터 우리가 갈라져 나온 이후에 진화했음이 분명하다면, 비비나 비버나 새뿐만 아니라 침팬지에게서 구태여 그 흔적을 찾으려 할 하등의 근거가 없다. 유인원 언어 논란으로 유명해진 침팬지 칸지처럼 매우 영리한 원숭이 몇 마리가 훈련에 의해 시각적 상징을 사용했다는 따위는 인류의 언어 진화를 이해하는 데 곁가지일 뿐이다. —p518-519, The mating mind
촘스키-핑커 논쟁에 대해:
스티븐 핑커는 언어가 생물학적 적응임을 보여주는 특성들을 열거하고 있다. … 이러한 특징들은 언어가 진정한 인간 본능, 즉 마음의 적응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것들은 인간의 모든 마음의 적응들에 공통된 특징들이다. 언어, 깊이 지각, 얼굴 알아보기, 성적 끌림, 자전적 기억, 계획적 관계 맺기 등의 능력들은 모두 특화된 기술들로서, 자연적으로 습득되고, 무의식적으로 전개되고, 보편적으로 향유된다. 이런 특징들은 언어가 수행하는 진화상의 기능이 무엇인지 정확히 밝히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것들은 언어가 진화한 것임을 보여줄 뿐 왜 진화했는지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노암 촘스키의 연구도 똑같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는 아이들이 부모와의 되먹임이나 정식 교육을 거친다고 해서 언어의 근본적인 통사규칙들을 배울 수는 없다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쳤다(see Poverty of the stimulus). 촘스키의 논증은 언어를 학습에 의한 문화적 발명품으로 본 1950년대행동주의 관점에 큰 타격을 주었다. 하지만 언어가 선천적인 유전된 능력에 따른 것이라는 그의 논증도 언어가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밝히는데는 유용한 시야를 제공해 주지 못했다. 사실, 촘스키는 언어가 다윈주의 과정들을 거쳐 진화했을 가능성을 거부해 왔다. … 촘스키는 심지어 크기가 일정수준 이상 되는 뇌라면 최소한 1천 억 개의 신경세포를 좁은 공간에 밀어 넣어야하므로 일종의 신비로운 진화적 부산물로서 언어 능력이 자동적으로 생길 수 있을 것이라는 억측을 내놓기도 했다. —p520-521, The mating mind
언어의 진화를 생물학적 이타주의만으로 설명하기는 부족:
언어의 숨겨진 이익에도 기본적으로 세 가지 옵션이 있으니 바로 혈연관계, 호혜주의, 성선택이 그것들이다. 말하기의 적응도 이익은 혈연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기나, 상호이익이 되는 정보교환관계 유지하기나, 혹은 짝 유혹하기에서 나온다. 나는 이 세가지 이익이 모두 중요하다고 확신하며, 따라서 성선택이 인간의 언어를 만든 유일한 선택압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다만 여기서는 인간이 말하는 방식들 가운데 혈연관계와 호혜주의로는 영 아귀가 맞지 않는 몇 가지 특징들이 있으니, 이것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해 보자는 것이다. …
언어를 순수하게 정보 전달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발화자보다 청자에게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간다. 발화자는 이미 전달할 정보의 내용을 알고 있으므로, 그것을 남과 공유함으로써 새로이 얻을 것이 없다. … 혈연관계와 호혜주의 이론의 기본 골격대로라면, 언어의 주된 이익은 청자에게 돌아간다. 이것은 흥미로운 예측을 일으킨다. 즉, 우리는 남의 말은 극도로 귀담아듣고, 자신의 말은 극도로 아끼는 종이 되었어야 한다. 우리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경청하는 행위를 이기주의의 극치로 보고, 쉴 새 없이 떠드는 행위를 숭고한 이타주의로 여겨야 한다. 사람들은 엄청난 뇌물을 써서라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으면서 남의 속 깊은 비밀까지 다 듣는 심리치료사가 되는 부도덕한 짓을 저질러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류의 특징과 다르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을 아무 집단이나 골라서 관찰해 보라. 그러면 혈연이나 호혜주의 언어이론이 예측하는 행동과는 정반대의 양상을 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 먼저 말하려고 경쟁하며, 상대가 자기 말을 듣도록 하기 위해 애를 쓴다. 듣는 척할 때도 사실은 남의 말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다음에 자신이 할 말을 준비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료에게 발언권을 양보하지 않는 사람은 이타적인 사람이 아니라 이기적인 사람으로 여겨진다. 번갈아 하기 규칙은 듣는 순서가 아니라 말하는 순서를 정하기 위해 생겼다. …
게다가 혈연이나 호혜주의 이론은 우리의 해부학 구조의 진화 방향을 잘못 짚었다. 만약 말하기가 손해고 듣기가 이익이라면, 정보 이타주의의 비용을 잡아먹는 우리의 발화기관은 억지로 몇 마디 알아들을 수도 없는 웅얼거림이나 겨우 할 수 있을 정도의 흔적기관으로 남았어야 마땅하다. 정보 획득의 이익을 거둬들이는 우리의 귀는 동료가 마지못해 내뱉는 모든 값진 지식들을 몽땅 흡수하기 위해 전 방향으로 회전하는 거대한 보청기로 진화했어야 한다. 이 역시 현실과 정 반대다. 우리의 청각기관은 진화상 정체하여 다른 영장류들의 청각기관과 매우 흡사한 반면, 우리의 발화기관은 엄청나게 발전했다. 적응의 짐이 듣기가 아니라 말하기에 지워지 것이다. 우리의 대화 습성과 더불어 이러한 해부학적 증거는 듣기보다 말하기에 커다란 진화상의 이익이 숨겨져 있음을 암시한다. —p527-530, The mating mind
언어의 진화에 있어서의 성선택의 역할:
인간의 구애의 상당 부분은 언어에 의한 구애다. … 언어가 언어구애를 위해 진화했다는 아이디어는 말 잘하기의 성적 보상을 확인함으로써 이타주의 문제를 해결해준다. 목적이 무엇이었든 간에 일단 언어의 싹이 진화하기 시작하자 성적인 동기를 품은 우리 조상들은 자신들의 타고난 언어능력을 구애에 써먹기 시작했을 것이다. 언어의 복잡성은 고삐 풀린 성선택, 잘 정리된 생각에 기우는 마음의 편향들, 그리고 적응도 지표 효과의 결합을 통해 진화했을 것이다. —p530-534, The mating mind